우리의 마음이 글이 된다면, <우리들의 블루스>의 노희경

2023-03-20

[한겨례21_이주현  / 사진 오계옥 기자] <우리들의 블루스> 의 노희경 작가 인터뷰
냉소와 천박함이 싫은, 남의 아픔을 보듬는 감각 

노희경 작가가 즐겨 찾는 서울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했다.

“우리가 아무리 아름다운 드라마를 만든다고 해도,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만큼 아름다운 드라마를 만들 순 없을 거야.” -<그들이 사는 세상>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입산 금지래. 백록담 못 가. 백록담은 저기. 저기 가면 사슴도 오고 노루도 와서 거기서 물 먹고 그래. 보이나? 나중에 눈 말고 꽃 피면 오자. 엄마랑 나랑 둘이. 내가 데리고 올게. 꼭.” -<우리들의 블루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과 아름다운 사건들로만 채색돼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지 않을까. 대개 삶은 즐겁기보다 힘겹고 달콤하기보다 씁쓸하다. 가족·친구·연인에 대한 근심 걱정을 둘러메고 원망하고 후회하고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웃고 울고 노래하고 악을 쓰며.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엔 그런 사람, 그런 삶이 있다.

 1995년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 당선하면서 드라마작가로 데뷔, <거짓말> <꽃보다 아름다워> <굿바이 솔로> <그들이 사는 세상> <디어 마이 프렌즈> <우리들의 블루스> 등을 선보이며 얄궂은 삶에서도 기어이 빛나고 뭉클한 한순간을 길어내고야 만 작가. 한때는 뜨거워서 델 것 같았고 예리해서 벨 것 같았던 그의 글은 최근 힘을 뺀 일상의 언어, 투박한 생활어로 온기와 생기를 전한다. 30년 가까이 뜨겁고 치열한 현재형 작가로 대중의 마음과 접속하고 있는 노희경 작가를 2월17일 서울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2년에 한 편씩은 꾸준히 작품을 내놓으셨는데 <라이브>와 <우리들의 블루스> 사이엔 4년의 공백이 있었습니다. 

“그사이 엔지오(NGO·비정부기구) 이야기 <히어>(HERE)를 썼죠. <히어>가 방영됐다면 2년에 한 편씩 꾸준히 일한 작가가 됐겠지만 코로나19로 상황이 좋지 않다보니 해외 촬영이 필요한 <히어>만 붙잡고 있을 순 없었어요. 그때도 작품 준비하면서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엔지오 이야기라 엄청나게 많은 취재가 필요했어요. 대충 알아서 쓸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거든요.”


 ―작가님의 공부란 주로 어떤 공부인가요. 

“사람 얘기 듣는 거죠. 방구석에 혼자만 있으니 세상을 잘 몰라요. 지금은 어떤 작품을 하든 취재해요. <디어 마이 프렌즈> 때도 동네 피트니스센터 다니는 아주머니들 밥 사주고 차 사줘가며 취재했어요. <그들이 사는 세상> 때부터 취재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 작품도 많이 챙겨보지만 왠지 그건 죽은 공부 같아서 사람 얘기 들으러 다녀요. 그게 저한테는 공부죠. <우리들의 블루스> 땐 제주도에서 몇 달 살며 시장 사람, 해녀, 어부 이야기를 다 들었어요. 그러니까 거짓말로 쓰는 것 같은 느낌은 안 들죠. 이 사람들의 24시간이 내 머릿속에 잡히고 말투가 잡히고 나면 대본 쓰는 시간은 길지 않아요. 취재가 1년이면 대본 쓰는 데 1년, 시간이 비슷하게 걸려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tvN 제공

잊히는 소중한 것을 아름답게

―<우리들의 블루스>는 단막극처럼 분절된 구성에, 20부작, 주인공만 14명, 배경은 제주도였습니다. 작가님으로서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 작품이었죠.

“남이 하지 않는 것, 내가 전에 하지 않았던 걸 하는 게 재밌어요. 그런데 아무리 몸부림쳐도 사람들은 내 글인 줄 알아요. 그래서 하다못해 형식이라도 바꾸자 했던 거죠. 생각을 다 바꿀 순 없으니까.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막장 드라마를 쓸 것 같지도 않고, 다양한 장르를 고민하다 나온 구성이었어요. 늘 마라톤만 하다 짧게 가니 재밌던데요.”


―이야기나 캐릭터 측면에선 무엇을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으셨어요.

“그리운 정서들, 사라져가는 정서들이 있잖아요. 자극적인 이야기 말고. 친구들과 다 함께 어울려 놀았던 시절의 정서, 친구와의 우정과 의리, 부모에게 못다 한 이야기 등 여전한 내 숙제거리 혹은 화두가 있는데 그런 얘기라면 누구에게라도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관계가 그리운, 외로운 시기였나요.

“전 외롭진 않아요. 외롭진 않지만 잊혀가는 것들이 확실히 보였고, 소중한 관계를 가꿔나가야 한다는 필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예전엔 일만 소중했거든요. 마치 일중독이 대단한 자랑인 것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었죠. 그런데 40대 중반부터 자각했어요. 나 일밖에 안 했네. 일하는 게 뭐 대단한 자랑인가? 먹고살려고 한 건데. 이런 자각을 하면 허전함이 찾아오죠. 과연 내가 친구는 잘 챙겼나? 섣불리 깨뜨린 관계는 없나? 동료는 많은데 친구라고 말할 사람은 몇 안 되고, 몇 안 되는 친구도 일방적으로 내 시간에 맞춰야 하고. 인생을 잘못 사는 것은 아닌가. 일에 매몰돼 있던 어른이 일을 놨을 때 얼마나 처절하게 외로운지 주변에서 많이 봤어요. 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면서 삶이 조금 더 재밌어진 건 확실해요.”


―<우리들의 블루스>의 여러 인물 중 이야기를 촉발한 캐릭터는 누구였나요.

“캐릭터의 촉발은 은희(이정은 분)와 동석(이병헌 분)이에요. 시장에 가면 억척스러운 사람들이 있잖아요. 시장에서 장사하는 동석이 또래의 남자들도 주의 깊게 관찰했고, 제주도의 생활력 강한 여자들을 보면서도 스윽 상상하는 거죠.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는 거죠. 그러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어요. 그 생활력과 생존력에!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나의 현재적 고민이 중요해요. 그리고 어떤 관계를 설정하고 그 마음속으로 들어가보면 거기 이야기가 있어요. 저는 관계가 중요하고 관계 속에서 무엇을 느끼느냐가 중요해요. 무엇이 불편했고 무엇이 행복했는지.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어떤 순간, 찬란했던 순간, 사무쳤던 순간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그것이 기억될 만한 순간이라면 아름답고 강렬하게, 캐릭터들을 통해 남겨주고 싶었어요.”

노희경 작가의 작업실. 노희경 제공

삶이 경쾌해지니 글도 가벼워졌다

―감독과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촬영의 방식, 톤, 호흡, 연기 등을 세세하게 조율하는 편인가요.

“네. <우리들의 블루스> 김규태 감독과는 함께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우리는 사전에 충분히 얘기를 나눠요. 둘이서 배우 데려다놓고 이 톤이다 저 톤이다 하면 배우도 헷갈리잖아요. 엄마 아빠가 싸우는 꼴이죠. 감독과 철저히 생각을 맞추는 데 두세 달 이상 걸려요. 규태 감독은 많이 열려 있어요. 감독의 재량권이라며 작가의 의견을 받지 않아 부딪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같이 성장해왔거든요. 당연히 감독이 내게 대본 수정을 요구할 수 있고 나 역시 그림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죠. 적이 아닌 동지임을 정확히 인지하는 거예요. 최종 작품이 우리에겐 우선이니까.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우리는 안 싸웠어요.”


―<디어 마이 프렌즈> <라이브> <우리들의 블루스>까지, 작가님의 이야기가 전보다 따뜻하고 밝아졌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내가 좀 밝아지고 가벼워졌어요. 그게 작품에 녹아나는 것 같아요. 글 쓰는 것도 옛날보다 더 재밌고. 진지한 것과 무거운 것, 어두운 것과 진지한 것, 가벼운 것과 천박한 것을 혼돈한 시간이 길었어요. 이제는 그 혼돈의 시기가 지났고요. 가벼움의 반대말은 무거움이구나. 진지함의 반대말은 천박일 수 있겠구나. 무거운 것은 진지한 게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이 정립된 게 <디어 마이 프렌즈> 때부터인 것 같아요. 마음공부를 하면서 안 거예요. 내 삶이 정말 무거운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생각한 거구나. 가볍게 생각하면서 삶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삶이 경쾌해지니까 글도 가벼워지더라고요. 사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내가 쓴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불행한 사람들 이야기예요. 그럼에도 가장 밝을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이 그 순간에 집중해요. 죽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친구랑 있으면 재밌고, 누굴 욕할 땐 진지하게 욕하고, 싸울 땐 진지하게 싸워요. 과거의 내 주인공들은 마치 천형을 지고 사는 사람 같았는데, <디어 마이 프렌즈> 동창회 장면을 보면 ‘걔 어딨어?’ ‘걔 죽었어!’ ‘뭐 물어보기만 하면 죽어’, 이렇게 죽음도 코미디가 되잖아요. 엄청난 해학이고 엄청난 자유인 거죠. <디어 마이 프렌즈> 이후 내 모든 캐릭터는 지금 여기에 집중해요.”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한 장면. tvN 제공 

―작가님의 인물들에게선 건강한 억척스러움이 보여요. 작가로서 어떤 인물에 매료되나요.

“치열한 사람이 좋아요. 시니컬한 사람을 제일 싫어해요. 자기 삶을 비아냥거리는 데 시간을 쓰는 사람, 냉소적인 사람들이 불편해요. 그래서 내 캐릭터들은 혼자만 괴로운 척하지 않아요. 그냥 괴로운 거지 나만 괴로운 척은 안 해요. 저 역시 젊은 시절엔 내 아픔만 봤어요. 그래서 30대 작가가 그런 이야기를 썼다 그러면 이해해요. 젊을 땐 자기에게 몰입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런데 작가 나이 사십, 오십인데 여전히 자기 아픔에만 빠져 있으면 안 되죠. 남의 아픔을 보려는 순간 어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 인물들도 주변 사람들을 보기 시작해요.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집집이 괴롭고 슬픈 일이 있잖아요.”


아픈 세상 눈감는다고 없어질까

―<라이브>는 개인적 아픔을 넘어 사회적 아픔과 시스템에 눈길을 주려 한 작품 같았습니다.

“<라이브>는 공부하려고 시작한 작품이에요. 장르물을 한번 써봐? 잘 모르지만 공부 한번 해볼까? 그래서 취재했고 경찰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새롭게 알았어요. 초동수사에 나서는 건 경찰이고 이후 형사한테 사건이 이첩된다는 것도 알았고, 경찰이 폄하받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광화문 촛불시위 때 정말 슬펐어요. 많이 울었어요. 집회에 동원된 경찰 개개인은 죄가 없죠. 시민과 경찰은 적이 아닌데. 일은 윗선에서 벌이고 싸우는 건 국민이고. 민중의 지팡이가 민중의 지팡이일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경찰들 보면 짠하죠. 우리가 사람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경찰이라는 직업군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제대로 이야기를 못한 것 같아요.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 너무 많아요. 아픈 세상에 눈감는다고 아픔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보는 게 낫죠. 보고 느끼고 생각한 걸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남겨놓으면 그게 또 누군가의 마음을 툭 쳐줄 수 있거든요. 이건 사담인데, 한번은 길을 가다 경찰을 만났어요. 경찰 사이에서 내가 영웅이라나. 경찰서에선 아직도 <라이브>를 틀어놓고 있대요. 이젠 소방관, 간호사도 자기 얘기 해달라고 연락이 와요.(웃음)”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배우들이 작가님 드라마에서 새로운 옷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들의 블루스>의 이병헌도 그랬죠. 툭하면 엄마한테 바락바락 소리 지르는 남루한 차림새의 만물상 장수를 어떤 작가 어떤 감독이 선뜻 이병헌에게 제안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다행히 배우 복이 있죠. 나이대만 맞으면 거의 모든 대본이 병헌씨한테 가는 것으로 아는데, 이런 역할은 안 해봤지 싶어서 대본을 주는 거예요. 이병헌 같은 배우가 내 작품으로 무슨 더 큰 부와 명예를 얻겠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안 해본 역할을 하는 게 배우로서의 바람 아니겠어요. 그래서 큰 배우들이 올 때는 더더욱 지금까지와는 다른 역할을 맡겨요. 차승원씨는 그간 설정 연기를 많이 했잖아요. <우리들의 블루스> 때도 설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왜 꼭 설정을 해야 돼요? 그냥 평범하게 말하면 안 돼요? 그랬더니 3초쯤 말없이 가만있더니 ‘그렇네, 내가 너무 설정을 하고 연기했네. 그래 그냥 하면 되는데. 여태까지 너무 설정을 했네’ 하더라고요. 캐스팅할 땐 누가 이런 역을 안 했는지부터 생각해요. 이 역할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 연기는 잘하는데 이 역할을 지금껏 안 해본 사람을 떠올려요.”


―김혜자, 고두심, 나문희, 윤여정 같은 선생님의 경우는 어떤가요. 워낙 오랜 시간 연기해온 분들이라 그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안 했던 걸 찾죠. 김혜자 선생님은 최근에 소녀소녀한 역할만 했잖아요. 그런데 <우리들의 블루스>에선 그러면 안 되거든요. 고두심 선생님도 제주도 사투리를 살벌하게 쓰는 척박한 역할인데 최근엔 그런 역을 안 하셨죠.”

노희경 작가가 즐겨 찾는 서울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야기꾼이 아닌 마음 탐구자

―1995년 드라마 극본 공모전으로 데뷔하셨습니다. 10대 시절에도 글 쓰는 게 꿈이셨나요.

“네, 초등학생 때부터요. 그때 글을 써서 상을 탔어요. 다른 걸로는 상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내가 글 쓰는 데 재능이 있나?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한 거죠.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절박해졌고, 딱 1년만 드라마 공부하고 안되면 때려치우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동안 난 왜 작가가 되지 못했을까, 왜 시도 안되고 소설도 안됐을까, 그렇다면 드라마로도 안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 때 스스로에게 질문했어요. 넌 왜 안된 것 같니? 그때 이미 젊은 나이에 데뷔한 시인이 많았어요. 이병률 시인(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도 동기고 함민복 시인도 또래인데 다들 졸업하자마자 데뷔했단 말이죠. 그런데 넌 왜 안됐니? 생각해보니 나는 선생님들이 쓰라는 대로 안 썼어요. 내가 누구의 조언을 듣지 않는 애였구나. 그렇다면 드라마 공부할 때는 선생님이 쓰라는 대로 한번 써봐야겠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딱 1년 공부해서 드라마작가가 됐죠. 지금도 저는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그에게 존경할 만한 스승이 있나 봐요. 스승을 모신다는 건 겸손한 거죠. 소통할 때 상대의 말을 들으려는 사람이라는 신뢰가 생기니까요.”


―시나 소설에 대한 미련은 없으세요.

“없어요. 솔직히 저는 우리나라 문학보다 드라마가 더 좋다고 생각해요.”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 이야기를 짓는다는 것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나는 이야기를 짓는다는 생각은 잘 안 해요. 그런데 어떤 관계, 어떤 마음을 궁금해하는 탐구심은 있어요. 우리는 왜 상처받고 어떻게 그 상처를 이겨내는지, 우리는 어떤 순간에 행복하고 어떤 순간에 절망하는지. 그렇게 탐구하다보면 거기에 부합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우리들의 블루스>의 동석과 옥동(김혜자 분), 부모 자식 간 얘기야 뻔하잖아요. 그런데 동석이 그 순간에 느꼈던 마음과 엄마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과정을 쓰는 거예요. 그 장면 쓸 때 좋았어요. 동석이, 저수지가 된 엄마의 고향 집을 찾아가는 길에서 엄마의 과거를 듣는 장면. 사실 그게 무슨 스토리예요. 그냥 그 사람의 마음 경로지. 장황한 이야기가 아니라 명징한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죠. 탐구할수록 예뻐요, 그 마음이. 그렇게 본다면 나는 이야기꾼은 아니에요. 재벌 드라마에서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는 거 보면서 막 감탄해요. 엄청난 이야기꾼들이구나 하면서. (웃음) 나는 사라져가거나 빛을 잃어가는 것에 현미경을 대고 그 순간을 자꾸만 보려고 하는 사람이에요.”


노희경 작가의 일상

노희경 작가의 하루는 108배와 명상으로 시작된다. 이후의 시간은 가벼운 운동과 식사, 독서와 영상물 시청, 감각을 일깨우는 ‘느끼기’ 활동 등으로 채워진다. “자기 전까지 운동을 해요. 안 그러면 못 살겠어. 너무 아파서. 자기 전까지는 계속 움직이려고 해요.” 본격적으로 드라마 집필에 들어가면 생활도 바뀐다. 아침 명상까지는 이전과 동일하다. 대신 식사하고 걷고 집필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보통 일은 오후 5시쯤 끝내요. 그렇지 않으면 밤에 심장이 심하게 뛰어요. 마음을 진정시키는 시간이 필요하죠. 심장이 차분해지는 데 최소 4시간, 많게는 6시간이 걸려요.” 젊어서 자주 하던 밤샘 작업을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일탈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할 때는 철저하게 생활을 지켜요. 만약 아파서 글을 못 쓰면 나 때문에 여러 사람 고생하니까. 일하면서 아프다, 힘들다 얘기하는 게 싫어요. 그런 말을 안 할 수 있는 건 이 루틴을 지키기 때문이에요. 좋은 루틴이 가져다주는 효과가 커요. 현재에 집중하면 무의식이 일을 합니다.”

노희경 작가의 대본집. 


에필로그

노희경 작가의 팬인 후배 기자도 인터뷰에 동석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후배를 본 그는 “이쪽에 와서 들어요. 거기선 잘 들리지도 않을 텐데. 지금 기운 없어서 목소리도 작은데”라며 먼저 사람을 챙겼다. 요즘 건강이 썩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내심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나간 인터뷰 자리였지만 ‘스타 작가’가 건넨 배려에 걱정도 긴장도 녹아내렸다.

그는 매일 하루의 좋았던 순간을 숫자로 기록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어제는 좋은 감정이 일곱 번이었고 나쁜 감정은 세 번이었다는 식으로. 숫자로 기록하면 정확해지고, 순간순간의 감각이 살아나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재밌는 건 대다수의 날이 좋은 날이 더 많다는 거예요.” 문득 이날은 노희경 작가에게 어떤 감정으로 기록됐을지 궁금했다. 자주 따뜻하게 웃어줬던 만큼, 부디 좋은 날로 기록됐기를. 결국 인터뷰는 팬미팅 행사로 마무리됐다. 질문을 모두 마치고 팬으로서의 마음을 전하고 조심스레 사진 요청을 하면서.


작품 목록

<우리들의 블루스>(tvN, 2022년)

<라이브>(tvN, 2018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tvN, 2017년)

<디어 마이 프렌즈>(tvN, 2016년)

<괜찮아 사랑이야>(SBS, 2014년)

<그 겨울, 바람이 분다>(SBS, 2013년)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JTBC, 2011년)

<드라마 스페셜: 빨강 사탕>(KBS, 2010년)

<그들이 사는 세상>(KBS, 2008년)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KBS, 2007년)

<기적>(MBC, 2006년)

<굿바이 솔로>(KBS, 2006년)

<유행가가 되리>(KBS, 2005년)

<꽃보다 아름다워>(KBS, 2004년)

<고독>(KBS, 2002년)

<화려한 시절>(SBS, 2001년)

<바보 같은 사랑>(KBS, 2000년)

<빗물처럼>(SBS, 2000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MBC, 1999년)

<슬픈 유혹>(KBS, 1999년)

<거짓말>(KBS, 1998년)

<드라마 스페셜: 아직은 사랑할 시간>(KBS, 1997년)

<내가 사는 이유>(MBC,1997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MBC, 1996년)

<MBC 베스트 극장: 엄마의 치자꽃>(MBC, 1996년)

<MBC 베스트 극장; 세리와 수지>(MBC, 1996년)


<출처 : https://v.daum.net/v/20230318141307304?from=newsb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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